Elephant Index김병호

거시경제

속도를 설계하지 못한 사회는 결국 사람을 소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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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샌더스는 최근 인터뷰에서 AI를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라고 평가하면서도, 그 발전 속도와 방향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했다. 그의 문제의식은 기술 그 자체에 있지 않다. 문제는 기술이 어떤 경제 구조 속에서, 누구의 이익을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는가다. 기술은 생산성을 높이지만, 조절 장치 없이 작동할 때 불평등과 불안정을 함께 증폭시킨다.

이 경고는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는 이미 빠르게 성장하는 법은 배웠지만, 그 속도를 관리하는 법은 아직 익히지 못했다.

우리는 2010년 전후로 1인당 GDP 2만 달러를 넘어서면서부터, 다양한 영역에서 고속 성장의 부작용을 본격적으로 경험해왔다. 플랫폼 산업, 부동산, 유통, IT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속도와 효율을 최우선으로 삼은 성장은 분명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노동 환경의 악화, 사회적 안전망의 공백, 그리고 구조적 피로가 누적되어 왔다. 이를 개선하려는 제도적·사회적 노력은 이어졌지만, 그 과정은 한국이 세계 경제와 기술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 쉽지 않다는 현실을 동시에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산업재해와 자살과 같은 극단적 지표에서 나타나는 계층 간 격차는 오히려 더 뚜렷해졌다. 평균적인 성장의 숫자는 개선되었지만, 위험과 불안정은 특정 계층에 집중되었고, 이들이 체감하는 삶의 벽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성장의 성과는 평균으로 분산되었지만, 성장의 비용은 구조적으로 가장 약한 지점에 머물러 있다.

이 구조는 산업 현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교육 역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학교는 배움의 공간이라기보다 입시와 수행평가를 관리하는 시스템이 되었고, 아이들은 새벽까지 잠을 줄여가며 일정과 평가에 맞춰 움직인다. 이는 개인의 노력이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다. 시간, 비용, 정보 접근성에서 유리한 계층만이 이 속도를 감당할 수 있는 구조가 이미 고착화되었다. 교육에서 발생하는 격차는 성취의 차이를 넘어 삶의 경로 자체를 갈라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40년을 목표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폐지된다는 논의가 등장했다. 표면적으로는 학생 부담 완화와 교육 정상화를 위한 결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학생을 위한 선택인지, 아니면 급격히 줄어드는 학령 인구와 입시생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대학 기관 중심의 전략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질문이 제기되지 않고 있다. 시험 하나를 없앤다고 경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가 방식이 복잡해지고 불투명해질수록, 그 부담은 다시 가정과 개인에게 이전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쿠팡 사태가 보여준 구조와 닮아 있다. 초고속 배송이라는 혁신 뒤에는 과도한 노동 강도와 안전 문제가 있었다. 속도와 효율을 유지한 채 형식만 바꾸는 개혁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책임과 비용은 언제나 가장 취약한 지점으로 이동한다. 교육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기술 경쟁에서 한 발 물러설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AI, 반도체, 로봇, 자동화에 대한 투자는 한국에게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기술 투자를 멈추는 순간, 한국은 미국과 중국과 같은 강대국이 설계한 기술 질서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기술 주권을 잃으면 산업 경쟁력과 일자리, 협상력 역시 함께 약화된다.

문제는 투자 자체가 아니라 그 방향과 속도다. 기술 경쟁을 위해 더 빨리 달리되, 그 속도를 사회가 감당할 수 있도록 조절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면 혁신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갈등의 원인이 된다. 자동화로 사라지는 일자리에 대한 대비, 교육과 노동에서 발생하는 격차를 완화할 제도, 기술 발전의 성과가 특정 집단에만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합의가 동시에 설계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들을 종합해 보면, 지금의 혼란과 시행착오는 우리가 길을 잃고 있다는 신호라기보다 우리만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받아들이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과 감당 가능한 범위를 냉정하게 인식한 위에서 한국 사회에 맞는 전략을 스스로 설계하는 일이다. 누군가를 뒤처지게 만들지 않기 위해 속도를 조절하고, 가장 취약한 지점에 사회적 비용(위험)이 집중되지 않도록 구조를 고민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단순한 성장 전략을 넘어, 서로를 배려하고 호의를 나눌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일 것이다.

버니 샌더스의 경고는 기술 반대 선언이 아니다. 그는 기술을 멈추자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기술의 속도와 방향을 사회가 함께 결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이야말로 그 질문을 가장 진지하게 던져야 할 사회다.

빠르게 성장해온 만큼, 빠른 성장의 비용도 누구보다 선명하게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다수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방향과 속도가 설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목표를 가진 기업들의 모습도 많이 보인다.

https://www.youtube.com/watch?v=CLCJ6IqbHiU